히브리서 2장 1-19절
지난 시간 우리는 히브리서 1장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며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영광의 주님이심을 살펴보았습니다. 히브리서 2장은 그 영광스러운 아들이 왜 우리와 같은 낮은 인간의 몸을 입으셔야 했는지, 그리고 그분이 이루신 큰 구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깊이 있게 다루기 원합니다.
요약 (Summary)
히브리서 2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1-4절). 1장에서 선포된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근거로, 기자는 우리가 들은 복음의 진리에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면합니다. 천사들을 통해 주신 율법도 엄격히 집행되었다면, 하물며 주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성령의 표적들로 확증된 이 위대한 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자들이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둘째, 잠시 동안 천사보다 낮아지신 인자(人子)의 영광입니다(5-9절). 기자는 시편 8편을 인용하며, 인간이 본래 만물을 다스릴 존귀한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현재는 그렇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봅니다. 그분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죽음을 택하시고,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셨으나, 사망에서 부활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습니다.
셋째, 우리와 형제가 되신 구원의 창시자와 대제사장입니다(10-18절).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을 통해 구원의 창시자로 온전해지셨으며,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지니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의 공포에 매인 우리를 해방하시고,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직접 시험과 고난을 겪으셨기에, 그분은 시험 받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Q & A
본문의 핵심 질문들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 보겠습니다.
Q1. 왜 성도는 복음에서 "흘러 떠내려가기" 쉬운 존재인가?
흘러 떠내려간다는 것은 배가 항구에 정박하지 못하고 조류에 밀려나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의도적인 배교라기보다, 일상의 분주함이나 세상의 유혹 속에서 진리에 대한 유념함을 잃어버릴 때 일어나는 점진적인 이탈을 뜻합니다.
Q2. 왜 큰 구원인가? 그 구원의 위대함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구원이 위대한 이유는 첫째, 선포의 주체가 선지자나 천사가 아닌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목격자들의 확증이 있으며, 셋째,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증언(표적, 기사, 성령의 은사)이 뒤따랐기 때문입니다.
Q3. 하나님은 왜 아들을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는가?
이는 성육신(Incarnation)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셔야 했던 이유는 죽음을 맛보기 위함입니다. 신(神)은 죽을 수 없으나,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위해서는 죽음이 가능한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Q4.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불완전했다는 뜻인가?
여기서 온전하게 하다(teleioo)는 도덕적 결함의 보완이 아니라, 직무 수행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다라는 뜻입니다.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그분은 인간의 고통을 체휼하는 자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완벽한 자격을 갖추게 되신 것입니다.
묵상 (Meditation)
① 떠내려가지 않기 위한 정박: 말씀에 유념함
바다 위의 배는 가만히 있으면 조류에 따라 떠내려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분의 말씀에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세상의 가치관과 염려 속으로 떠내려가 버립니다. 히브리서 1장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영혼의 닻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들은 말씀에 더욱 유념(Pay closer attention)하고 있습니까?
② 영광을 위해 택하신 고난의 길
우리는 영광만을 원하지만, 우리의 주님은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습니다." 만물의 상속자께서 영광에 이르시는 방법은 낮아짐과 고난이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방식은, 직접 인간이 되어 고통의 현장으로 뛰어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삶의 비루함과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영광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③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심
만유의 창조주이신 분이
죄로 얼룩진 우리를 향해 "나의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한 근원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 보좌에 앉아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입고 우리가 겪는 죽음의 공포, 배고픔, 배신, 육체적 고통을 그대로 겪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연약함을 껴안으셨습니다.
④ 마귀의 최종 병기인 죽음의 파쇄
인류를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게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마귀는 이 공포를 이용해 인간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를 멸하셨습니다. 이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위해 천사의 신분이 아닌, 아브라함의 자손(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삶으로의 적용 (Application)
① 복음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Revaluing the Gospel)
우리는 혹시 구원을 과거에 받은 티켓 정도로 생각하며 등한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 구원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른 것인지, 얼마나 확실한 확증을 거친 것인지 다시 일깨웁니다. 이번 한 주간, 내가 받은 구원의 무게를 다시 묵상하며, 복음의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세상의 조류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그곳에서 돌이키는 시간을 가집시다.
② 시험 당하는 이웃을 돕기 (Helping those Tempted)
예수님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에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살면서 겪는 여러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은 단순히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돕기 위한 자격이 됩니다. 내가 겪은 아픔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내 주변에 시험 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손을 내밉시다.
③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된 삶 (Living without Fear)
경제적 위기, 질병,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이 모든 불안의 기저에는 생존에 대한 위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기를 무서워하며 종 노릇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를 선포하며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주님이 내 형제이신데 무엇이 두려우랴"라는 배짱이 필요합니다.
④ 신실하고 자비한 대제사장 의지하기 (Relying on the High Priest)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죄에 넘어지고 연약함에 눈물짓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갑시다. 그분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죄를 속량하셨으며, 지금도 우리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곧 승리의 비결입니다.
기도 (Prayer)
만유의 주재이시며 우리 구원의 창시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다가 이 마지막 때에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받은 이 위대한 구원을 소홀히 여기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믿음의 항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우리 영혼을 진리의 말씀으로 꽉 붙잡아 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영광스러운 보좌를 뒤로하고 천사보다 낮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합니다. 죽음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친히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매여 종 노릇 하던 우리를 해방해 주셨으니, 이제는 두려움이 아닌 소망으로, 비굴함이 아닌 담대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 시험 받는 우리를 능히 도우시는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오늘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나를 형제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 사랑에 힘입어 다시 일어나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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