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과 축복의 매뉴얼: 신명기 7장 12-16절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언약적 인애(헤세드)의 원리

구원받은 성민(聖民)의 자발적 순종은 무거운 율법의 족쇄가 아니라, 조상들과 맺은 신실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며 우리 삶의 자녀와 소산, 건강과 대적의 위협까지도 완벽하게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인애(헤세드)를 풍성하게 누리는 축복의 열쇠입니다.

말씀 요약 (Scripture Summary)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귀 기울여 듣고 신실하게 지켜 행할 때 임할 위대한 번영과 축복의 매뉴얼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순종함으로 반응할 때, 조상들에게 맹세하셨던 언약을 기억하시며 변함없는 인애(헤세드)를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니다. 그 사랑의 구체적인 약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랑과 번성의 보증: 순종하는 성민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그 수효를 크게 번성하게 하십니다.
  • 자손과 토지의 풍요: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약속의 땅에서 자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토지 소산과 곡식, 새 포도주, 맑은 기름을 차고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 번영과 축복의 매뉴얼
    가축의 번식: 소와 양의 새끼가 기적적으로 번식하게 하사 생육의 복이 만민보다 훨씬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 질병으로부터의 완벽한 보호: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경험하며 두려워했던 온갖 무서운 전염병과 악질로부터 온전히 지켜 보호하시고, 오히려 그들을 미워하는 대적들에게 그 질병들이 임하게 하십니다.

  • 대적을 향한 단호한 진멸: 하나님께서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눈으로 불쌍히 여기거나 타협하지 말고 온전히 진멸(헤렘)하며, 그들의 우상을 결코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그 가증한 우상과 풍습들이 성민의 올무(덫)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배경 (Biblical & Historical Background)

① 유목 방랑 생활에서 정착형 농경 사회로의 영적 대전환

본문은 출애굽 제1세대가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인해 광야에서 모두 소멸하고,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 집결한 출애굽 제2세대를 향해 선포되는 모세의 애타는 임종 설교입니다. 이들은 광야 40년 동안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에 의존하여 오직 야훼 한 분만을 바라보아야 했던 나그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단강을 건너 정복하게 될 가나안 땅은 씨를 뿌리고 가꾸어 1년 단위로 가축을 번식시키며 소산을 창고에 쌓아 두는 정착형 농경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극적인 환경 변화는 이스라엘에게 치명적인 영적 위기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농경 사회의 패러다임에 들어가 곡식이 쌓이고 소산이 풍성해지면, 매일 아침 하나님께 간절히 무릎 꿇고 의지하던 유목민적 야훼 신앙을 저버리고 '내 힘과 능력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자만심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를 다스리고 대지의 풍요를 준다는 가나안의 기복적인 바알과 아세라 종교 문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위험이 극도로 컸습니다.

② 당대 최강의 요새 바산과 헤스본 정복의 승리 의식

이스라엘 제2세대가 모압 평지에 서기 직전, 그들은 뜻밖의 거대한 전초전을 치렀습니다. 바로 아모리 왕 시혼의 헤스본과 바산 왕 옥의 바산을 물리친 사건입니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바산과 헤스본 성벽의 두께는 무려 9m에 달했으며, 성문은 두께가 45cm나 되는 단단한 나무와 쇠로 된 이중문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철옹성 같은 요새 성읍들이 요단 동편 지역에만 60개 이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손에 무기 하나 제대로 쥐어보지 못했고 군사 훈련도 받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대 최강의 연합군이었던 바산과 헤스본을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여호와의 초자연적인 도우심과 전쟁의 주권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38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눈에 보이는 성벽과 아낙 자손의 장대함에 압도당해 원망하고 실패했던 구세대의 길을 걷지 말고, 바산과 헤스본을 무너뜨리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손을 신뢰하며 담대히 요단 서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진격하라고 이 역사적 사실을 강력하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③ 고대 근동 종주권 조약의 전복과 신성한 결혼 정절

신명기의 언약 체결 양식은 당대 초강대국이었던 신앗시리아 제국의 에살핫돈 왕위계승조약(EST)을 비롯한 고대 근동의 군신 간 '종주권 조약' 형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고대 제국의 대왕은 피정복국의 봉신 왕들에게 "마음과 뜻을 다해 나를 사랑하라"고 명령했고, 이를 어길 시에는 온갖 질병과 저주로 진멸할 것이라 위협했습니다.

모세는 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과감하게 여호와 유일 신학으로 전복시켜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이신 여호와께서는 제국의 강압적이고 무자비한 지배와 달리, 아무 자격 없는 자들을 먼저 이집트의 잔혹한 노예노동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그들과 피로 맺은 거룩한 결혼 언약을 맺어 그분의 온전한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이방 민족을 용납하고 그들의 신과 풍습을 따르는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타협이나 친선 교류가 아니라, 가정을 파괴하고 남편과의 전인격적인 정절의 언약을 배신하는 가장 가증한 '영적 간음'이자 배교 행위였습니다.

심층 Q & A

본문 12절의 '듣고 지켜 행하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케브(Eqeb)'의 참된 어원과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우리말 성경에는 조건절인 "~하면"으로 다소 단순하게 번역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어 에케브(עֵקֶב, Eqeb)는 사람의 발꿈치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것은 '어떤 행동의 발뒤꿈치를 따라 밀려오는 당연한 결과', 즉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보수나 보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원어적 유희입니다.

이것은 기계적인 인과율(내가 이만큼 행동했으니 보상을 당당히 요구한다는 공로주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대가 없이 해방되어 성민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얻은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선택 사랑(아하브)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신자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드리는 자발적 순종의 삶은 공로를 쌓아 올리는 노동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은 자녀가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여 그분의 말씀의 발자취를 온전히 따라 걸을 때, 그 뒤꿈치를 따라 봄철의 시원한 소나기처럼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언약적인 헤세드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순종은 축복을 사들이는 화폐가 아니라, 하늘의 선물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인 것입니다.

본문에 거듭 반복되는 하나님의 인애, 즉 '헤세드(Chesed)'는 세상의 일반적인 사랑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특징을 지닙니까?

구약성경의 가장 위대한 단어 중 하나인 헤세드(חֶסֶד, Chesed)는 계약 당사자들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언약적 성실함이자 인자하심을 의미합니다. 본문과 소스들의 정밀한 주해에 기초할 때, 하나님의 헤세드는 다음 네 가지 압도적인 차별성을 지닙니다.

선택적인 배타적 사랑 (Covenantal Love): 헤세드는 이방의 모든 만민에게 무차별적으로 흩뿌려지는 일반 은총이 아닙니다. 여호와와 거룩한 피의 언약을 맺은 언약 공동체, 즉 하나님의 성민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어주시는 특별한 구속의 사랑입니다.

끝까지 쉬지 않는 집요한 사랑 (Persistent Love): 헤세드의 히브리어 원형에는 타오르는 '열정'과 '열심'의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룻기에서 보아스가 가난한 이방 여인 룻을 속량하기 위해 그 일이 완전히 성취되기까지 결코 쉬지 않고 뜨겁게 달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헤세드는 연약한 우리가 넘어질지라도 우리를 온전히 완성하시기까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집요하게 일하시는 끝없는 추적의 사랑입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개인적인 사랑 (Personal Love):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의 이름을 불러 기어이 복을 부어주셨던 것처럼, 헤세드는 뭉뜽그려진 거대한 대중을 향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일생의 굽이마다 찾아오셔서 내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친히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가장 세밀하고 인격적인 사랑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변함없는 사랑 (Everlasting Love): 시편 136편의 시인이 26번에 걸쳐 매 절마다 "그 인자하심(헤세드)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감격하여 노래했듯이, 이 사랑은 영원 전에 이미 시작되어 우리가 숨을 거두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할 때까지,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단 한 순간도 단절되지 않는 우주적이고 신성한 신실함의 보증입니다.

왜 신명기 7장에서 약속하시는 복들은 이토록 척박하리만큼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소산의 풍요(자녀, 토지, 가축의 생육)입니까?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세상적인 축복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 중요한 신학적 질문은 구약의 축복이 담고 있는 예표론적 성격과 언약의 범주를 깊이 이해할 때 비로소 완벽하게 풀립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보이지 않는 영적 천국의 영광을 보이는 역사와 땅의 복을 통해 실감 나게 배워야 했던 신앙의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이를 신학적 구원론의 관점에서 명쾌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본구원 (Primary Salvation): 인간의 그 어떤 행위나 수고도 개입될 수 없고, 오직 어린양의 피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집트(죄의 지배)에서 단번에 해방되어 약속의 나라 백성이 되는 단회적 은혜입니다. 신약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지옥의 형벌을 영원히 면하고 천국 백성이 되는 구원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건설구원 (Constructive Salvation): 기본구원을 얻은 성도가 약속의 땅(교회와 일상)에서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성화(거룩함)를 이루어가고, 천국이라는 기초 터 위에 성실하게 축복과 상급의 집을 지어 올리는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구약에서 약속하는 소생의 생육, 토지 소산의 풍요, 건강의 은총은 모두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신자가 이 땅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순종의 벽돌을 쌓아갈 때 누리게 하시는 '건설구원적 풍요와 천국의 상급'을 가시적으로 시사하는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 역시 이러한 영육 간의 조화롭고 건강한 축복을 단순히 기복적인 것으로 비하하여 배척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영혼의 거룩함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 일터와 가정에서도 맑은 기름과 소산의 번영을 주시며 형통케 하시는 풍성한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16절에서 가나안 일곱 부족을 긍휼히 여기지 말고 완전히 진멸하라는 명령은 현대 평화주의 윤리와 너무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준엄한 사법적 단호함 속에 감춰진 신학적 본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심판과 정복 전쟁의 기준은 결코 편파적인 인종차별이나 잔인한 영토 약탈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타협할 수 없는 죄악에 대한 공의의 사법 심판이었습니다.

족장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거민들의 죄가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도 즉시 땅을 주지 않으시고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의 회개를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 문턱에 선 시점에는, 레위기 18장에 참담하게 폭로된 것처럼 그 땅의 도덕적·인륜적 문둥병이 뼈 속 깊이 관영하여 온 땅이 스스로 주민을 토해낼 수밖에 없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진멸(헤렘, Herem)은 전염병과 같은 치명적인 죄의 바이러스가 갓 태어난 하나님의 성민 공동체 내부로 침투하여 온 이류를 살려낼 제사장 나라의 씨앗을 멸절시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사법적인 영적 방역 격리 조치였습니다. "그것이 네게 올무(덫)가 되리라"는 경고처럼, 죄에 대한 부당한 감상주의와 미온적 자비는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멸의 늪으로 몰고 가는 치명적인 덫이 됨을 성경의 역사가 엄중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악질'로부터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신 것과 오늘날 성도들이 세상 문화 속에서 누려야 할 전인격적 건강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이집트는 고온다습한 기후 조건과 사막의 먼지, 그리고 정결 규례가 없는 비위생적 주거 환경 때문에 각종 악성 피부병, 옴, 장티푸스, 이질, 천연두, 안질, 흑사병 등이 창궐하여 고대인들로부터 모든 질병의 본산지로 일컬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의 규례와 법도를 청종하면 이집트의 모든 끔찍한 질병과 악질로부터 너희를 멀리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우리의 보이지 않는 영혼뿐만 아니라, 보이는 육체의 건강과 삶의 환경까지도 정결하게 보호하시는 전인격적인 사랑의 설계도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율법 속에 담긴 위생법, 음식 규례, 경격 및 소독 법도들을 삶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내는 공동체는 세상의 질병과 혼란스러운 위기로부터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건강하고 활기찬 성민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깊이 있는 신학적 묵상 (Theological Reflections)

① 사랑의 안전벨트로서의 율법

인간의 좁은 이성은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 영혼의 비상을 가로막고 자유를 억압하는 답답한 쇠사슬이나 족쇄로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본문 속 하나님의 법도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굴레가 아니라, 죄악과 쾌락의 어두운 사망 절벽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는 우리 인생을 안전하게 붙잡아 주는 사랑의 안전벨트입니다.

시속 100km가 넘는 자동차 속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행동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억압이 아니라, 생명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신성한 울타리인 것과 같습니다. 가나안 일곱 부족의 타락한 음란 문화와 우상 숭배의 위기 한가운데서 선포된 타협 금지와 혼인 금지의 엄중한 법도들은,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들을 죄의 전염과 파멸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세밀하고 애끓는 은혜의 방어벽이었습니다.

② '종의 양심'에서 '아들의 양심'으로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의 인을 맞은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을 마지못해 지켜야 할 무거운 숙제로 마주하지 않습니다. 나를 세상 가운데서 가장 미약하고 보잘것없을 때 먼저 선택하시고 사랑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슴 깊이 신뢰하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어 기꺼이 순종의 길을 자원하여 걷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들의 양심이자 자발적인 순종의 원리입니다. 율법의 글자에 초점을 맞추면 절망하지만, 하나님 한 분을 온 맘 다해 뜨겁게 사랑하면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가뿐히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자발적 순종의 자리에 도달하게 됩니다.

③ 과거형에 안주하는 첫사랑의 무덤을 깨뜨리라

선지자 예레미야는 쾌락과 번영에 눈이 멀어 바알에게 몸을 던진 이스라엘을 보시며 야훼의 고독하고 시린 속내를 눈물로 폭로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예레미야 2:2).

놀랍게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비극으로만 기록되었던 광야 40년의 거친 광야가, 하나님의 기억 속에는 오직 구름기둥 하나만 믿고 척박한 돌산을 한 걸음씩 묵묵히 뒤따라왔던 아름답고 순수했던 신혼의 시절로 눈부시게 박제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내가 왕년에 목숨 걸고 기도했었는데", 밤새 눈물 쏟으며 찬양했었는데"라는 과거형 시제의 추억만을 우려먹으며 살아가는 '신앙의 박제' 상태는 아닙니까? 하루가 지나면 이내 상하고 썩어 없어지던 광야의 만나처럼, 신앙은 어제의 기억으로 오늘을 버티는 연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하늘 문을 열고 내리시는 새 만나를 먹어야 하며, 매 순간 나의 고백은 "옛날에 주님을 사랑했었다"가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 주님은 내 삶의 유일한 전부이십니다"라는 살아 숨 쉬는 현재진행형의 첫사랑이어야 합니다.

삶으로의 실제적인 적용 (Practical Applications)

① 풍요와 성공의 순간에 고백하는 청지기적 물질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아름다운 집을 짓고 소와 양이 번성하며 통장의 잔고가 늘어날 때, 인간의 죄악된 기질은 순식간에 고개를 들며 속삭입니다: "내가 밤잠 줄여가며 일했고, 내 똑똑한 머리와 전략으로 이 풍요를 일구어냈다".

그러나 말씀은 번영의 한복판에 도달한 성도들을 향해 우레와 같이 외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힘)을 주셨음이라" (신명기 8:18).

내가 오늘도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 기막힌 영감과 지혜를 주는 뇌세포의 작동, 그리고 신실한 동역자들과 정직한 기회의 문을 열어주신 분이 오직 나의 구원자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삶이 윤택해질 때마다, 내 손의 수고를 자랑하는 교만을 철저히 꺾어버리고, 나의 소득과 시간의 정직한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이 모든 재물 얻을 힘을 주신 분이 오직 내 삶의 참된 주인 여호와이십니다"라는 아름다운 신앙의 정절을 온 삶으로 고백합시다.

② 이집트의 벽돌 공장을 멈추는 거룩한 저항, '온전한 안식일의 훈련'

고대 이집트의 지배 구조는 휴식 없는 끝없는 노동과 벽돌 생산량의 수치로만 인간의 존재 가치를 평가하던 무자비한 착취의 공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에게 신명기적 안식일을 명하신 핵심 가치는 단순한 육체의 쉼을 넘어, "너를 그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집트의 잔인한 종살이에서 건져내셨음"을 온 땅에 찬란하게 선포하는 거룩한 해방의 축제입니다.

더 많은 스펙을 쌓고, 쉼 없이 노동하며 부를 축적해야만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협박하고 가스라이팅하는 '현대판 가나안 이데올로기' 속에서, 성도가 주일 하루 생업의 도구를 완전히 내려놓고 예배하는 삶은 가장 강력한 영적 독립 선언이자 거룩한 저항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생존 기계나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친히 공급하시고 채우시는 고귀한 성민임을 주일 예배의 정결함을 통해 증명해야 합니다.

③ 가정의 영적 제단 회복: 신앙 교육의 외주화를 멈추라

오늘날 많은 기독교 가정이 범하는 뼈아픈 실책 중 하나는 자녀의 신앙 교육을 교회의 부서나 주일학교 프로그램에 완전히 전담시키고 방임하는 신앙 교육의 외주화입니다. 영어 수학 성적을 위해서는 밤낮으로 학원을 알아보고 고액을 아끼지 않으면서, 자녀의 평생을 좌우할 영혼의 성결 교육은 주일 단 1시간의 부서 예배로 퉁쳐버리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들의 여린 마음 밭에 말씀의 흔적을 날카롭게 새겨 넣는(Shannan, 쉐난) 교육의 일차적 전권과 거룩한 소명을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의 입술에 부여하셨습니다. 집안에 편안히 앉아 있을 때든지, 차를 타고 길을 갈 때든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누워 있거나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날 때든지 일상의 모든 사소한 공간을 소통과 신앙 간증의 현장(Diber, 디베르)으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을 가치 판단의 유일한 잣대(미간의 표)로 삼고, 세상 일터에서 편법을 쓰지 않는 정직함(손목의 기호)의 뒷모습을 보여줄 때, 자녀들은 부모의 삶을 생생한 교과서 삼아 가나안의 온갖 난잡한 가치관을 단호히 박멸하며 승리하는 영적 거목들로 우뚝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 (Prayer)

우리를 죄의 깊은 소용돌이와 영원한 사망의 절벽에서 아무런 자격 없이 오직 주권적인 선택 사랑으로 건져내어 보배로운 성민 삼아 주신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이 위대한 사랑의 법도를 기쁨으로 청종하며 온전한 순종의 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세상이 주는 풍요와 거대한 문명의 성벽 앞에서 스스로 메뚜기라 비하하며 주저앉았던 불신앙을 철저히 회개하오니, 철옹성 같던 바산과 헤스본의 성벽을 하나님의 한 호흡으로 단숨에 쓸어버리셨던 그 살아 계신 권능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에 깊이 숨어 들어와 도사리고 있는 가나안의 탐욕과 음란, 다른 이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교만하게 만드는 세상의 온갖 가증한 우상과 풍습들을 예수 이름의 단호한 검으로 철저히 격리하고 진멸하게 하옵소서.

이 땅의 일터와 학업, 비즈니스 현장에서 정직하지 않은 저울추를 교묘하게 사용하던 유혹을 꺾어 주시고, 우리에게 부요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공급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 오직 주님이심을 기쁨으로 감사하며 고백하는 청지기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이 과거의 뜨거웠던 은혜의 추억 속에 갇혀 말라가는 박제된 무덤이 되지 않게 하시고, 매일 아침 새롭게 공급하시는 하늘의 신선한 만나처럼 오늘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향한 현재진행형의 새 노래와 타오르는 사랑을 주님께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일 예배를 성결하게 드릴 때 세상의 무자비한 경쟁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는 참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가정에서 부모인 우리가 먼저 삶의 손목과 미간에 주의 말씀을 정직하게 살아내어, 대를 이어 거룩한 언약의 축복과 승리의 역사가 천 대까지 찬란하게 흐르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이자 거룩한 신랑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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